오, 나의 하나님!

하나님 품에 모든 좋은 것이..

순악질 의자왕 2020. 10. 31. 18:51

사람이 세상을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누군가와 함께 행복을 누려야 가치가 있습니다.
TV프로그램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분들의 사연을 재미나게 꾸민 프로입니다.
거기에는 세상에서 큰 상처를 받고 깊은 산속으로 도피한 분들도 있고..
마음과 몸이 망가졌으나 세상에서는 희망을 찾지 못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중으로 숨어든 분들도 있습니다.
자연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대체적으로 그 삶에 만족함을 누리고는 있지만..
그분들의 공통적인 것 한 가지는 외로움입니다.
그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개와 닭 또는 염소를 기르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벗 삼아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큰 상처를 안고 산에서 홀로 외롭게 살고 있지만..
깊은 산속 자연에서는 적어도 배신 때리는 일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자연이나 가축들이나 텃밭의 농작물들은..
배신의 아픔을 안겨주는 법이 없더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의 친구는 어딘가에 문제가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이세상의 친구는 예수의 모형이요 그림자일 뿐입니다.

인생은 고난의 바다와도 같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인생여정을 들춰봐도 그렇고..
야곱의 열한째 아들 요셉의 일대기를 살펴봐도..
위대한 왕 다윗을 일생의 행적을 따라가 봐도..
그들의 영광 뒤에는 언제나 지독히 쓴 고난의 발자취가 남아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욥의 고난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욥이 당한 고난보다 더한 고난을 당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때에 영적생활을 하면서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함부로 입을 놀려 원망의 말을 하거나 신세한탄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는 연배가 같아서 친구가 아니고..
이상과 생각과 나아가는 인생길의 방향이 같아보여서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욥에게는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엘리바스는 데만 사람입니다.(욥 2:11; 4:1; 15:1; 22:1)
‘데만’이란 에서의 후손, 즉 에돔족속을 가리킵니다.
당시 사람들은 조상의 이름을 후손들이 사용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또 큰 인물들의 이름을 따서 성읍의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에서의 장자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한 욥의 친구가 데만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 그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욥이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욥4:7)
그래서 욥이 악에서 떠나면 하나님께서 그의 상태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하였던 것입니다.(욥4:12-21, 15장, 22장, 창36:4, 대상1:35)
다음으로 ‘빌닷’입니다.
그도 역시 욥이 죄 지은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이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며 그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빌닷은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욥 42:7)
또 한 사람 소발은 나아마 사람입니다.(욥 2:11: 11:1, 20:1, 42:9)
소발은 고난 중에 있는 욥을 찾아가서 더 독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을 경우..
현재 죄로 인해 그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욥에게 속히 죄를 버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발은 ‘거만한자’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욥이 당하고 있는 참상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아 일주일 동안이나 아무 말도 못한 채 통곡하였습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면서 회개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회개만 하면 수치와 공포는 없어지고, 환난에서 건짐을 받아..
남은 평생을 안락한 가운데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비극은 죄에 대한벌이라고 주장합니다.
욥이 크게 번영하다가 졸지에 망한 원인은..
욥이 사악하여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남의 재물을 빼앗은데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고 단정하면서 욥을 공박하였습니다.
악인의 번영은 일시적일 뿐이며 필경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의하여..
모든 불의의 소유물은 그의 생명과 함께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논리의 부당성을 지적하시고..
제물을 통한 욥의 도고에 의해 그가 사유함을 받을 것을 명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치유를 자연에 맡기는 방법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회복과 치유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회복된 후에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의 이름은 없고 세 딸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고 파격적인 일입니다.
첫째 딸은 여미마입니다.
여미마는 순결과 평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만 순결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긋시아는 계피향이 진하다는 뜻입니다.
계피는 따뜻한 성질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따뜻함은 없고 얼음처럼 차가움만 있지만..
하나님께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게렌합북은 눈 화장을 뜻합니다.
욥의 친구들의 눈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눈이 비판적일 뿐..
그 내면의 참모습을 보는 안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겉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것들보다도..
감춰져있는 이면의 참모습의 아름다움을 깊이 꿰뚫어보십니다.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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