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때는 땅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땅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가나안은 땅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만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환경입니다.
가나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생활 속에 임하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제사장의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장차 천국을 상속받을 상속자들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나라는 백성이 있고 통치자가 있어야 비로소 나라로 성립됩니다.
교회가 천국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통치가 실현될 때 하나님의 나라로 인정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육신의 때를 살아야만..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립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누렸듯이..
오늘날 우리는 예수를 통하여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통치를 가로막아서는 원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여리고 성입니다. 이놈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하여 아쉬운 게 없습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극도로 싫은 것입니다.
이 여리고 라는 놈은..
견고한 성벽으로 방어막을 치고 제 고집만을 내세우기 바쁩니다.
생명과 복이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알려고도 안합니다.
이놈은 힘이 건장한 황소와 같습니다.
그러니 제 힘만 믿고 눈에 보이는 것만 의지하려듭니다.
생명과 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사람은 이런 것들이 무너져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무너지는 것은 건강에 관련된 문제일수도 있고 경제에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의한 상처에 의하여서도 여리고 성은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의해 무너져 내릴 때..
비로소 라합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됩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헷족속은 굴종과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원수마귀에게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던 자들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죽을 줄로 잘못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마귀가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흉악한 마귀를 닮아서 흉악한 생각에 사로잡혀 인생을 허비하는 자들입니다.
살인을 쉽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게 행음이고 동성애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성소수자의 인권운운하며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점성술과 우상숭배와 온 세상을 대상으로 거짓 사상과 거짓과학과 거짓종교로서..
사람들을 현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자들입니다.
기르가스는 토기 제작하는 자들입니다.
정교하게 만든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는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서 반신반의함으로..
영적인 일에 온몸을 던질 자세를 잡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아모리는 말재주가 좋은 자들입니다.
기막힌 화술로 사란들을 잘못된 인생길로 이끌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속은 더러운데 겉으로는 깨끗한 체 하는 자들입니다.
가나안은 페니키아라고도 하는데 천박한 재주로 많은 재물을 모은 자들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죽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브리스는 변변치 않은 신념과 이념을 중시하는 자들입니다.
신앙은 사람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여부스라는 이름의 뜻은 타작마당, 평화의 도시, 사랑과 풍요가 넘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증오, 원망, 불평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표리부동한 자들입니다.
히위는 진흙을 밟는 자들로서 현세의 비천함과 못견뎌하고..
염세주의자들처럼 자포자기로 자기비하를 일삼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을 상속할 자기 자녀들에게..
오늘도 이러한 가나안적 요소들을 말끔히 몰아내고..
그런 것들을 붕괴시키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패역을 일삼던 북이스라엘을 앗수르가 멸망시켰습니다.
그 앗수르가 하나님을 의지하던 히스기야를 멸망시키고자 침공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지키셨습니다.
150년 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따라 행하던 시드기야가..
처참하게 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설픈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의지하는 일이 위험한 것입니다.
위기를 맞이하여 히스기야는..
자기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종을 찾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반신반의 하던 시드기야는 기도할 생각을 전혀 못하고..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의 경고와 권면을 무시하면서..
마침내 자기의 예측과 생각을 따라 행동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늪으로 기어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윗 왕과 나단 선지자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받아 지켜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가나안을 철저히 몰아내고 교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과 교제도 하지 말고 통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입니다.
'오, 나의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른 인생길 3년.. (0) | 2022.11.07 |
---|---|
절기를 성대하게 지켜라.. (0) | 2022.11.01 |
표리부동.. (0) | 2022.11.01 |
마음과 생각을 지키자.. (0) | 2022.11.01 |
비빌언덕을 준비합니다. (2) | 2022.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