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나에게 십일조를 줘~

순악질 의자왕 2008. 11. 3. 09:15

십일조와 감사예물과 그 외의 헌물들을 강단에 올려..

목사로 하여금 복을 빌게하고..

교회의 강당유지보수와..

복음 전하는 전도와..

목회자들의 최소 생활비와..

구제에 쓰도록 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기성교단들에 속한 지교회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그 십일조에 대하여 말들이 많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말이 그른지 애매모호합니다.

이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십일조를 내지 않고 있는 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교인들은 [십일조를 꼭 교회에다 낼 필요가 있는가]라고 의문을 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따로 떼어 모아두었다가 그것으로 헌금도 하고..

그중에서 구제도 하고..

그 돈으로 적당하고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기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십일조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대충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들이 전란 중에 포로가 되고..

그 재산을 모조리 탈취 당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318명의 가병을 이끌고 쟁쟁한 나라들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구사하여 대승을 거두고..

포로들과 빼앗겼던 재물들을 되찾아왔습니다.

개선하는 길에서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 떡과 포도주로 위로를 받고..

그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축복을 받았습니다.(창14:14-20)

(축복이라는 말은 <복을빌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자기 형과 아버지를 상대로 사기를 쳐..

장자권을 훔쳐내고 외가로 도피하다가..

노숙하던 중에 꿈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깬 후에..

하나님께 십일조에 관한 내용으로 서원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창28:10-22)

그 후에 모세를 통한 율법으로 십일조를 명문화하였으며(례27:30-34, 신14:22)

가난하고..

사람 중에 보호자가 없거나..

빈약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들을 위하여..

3년에 한번씩 특별한 십일조를 내는 해를 정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신14:28-29) 
 

그런데 율법이 하나님을 섬기는 의식이나 인간관계의 규범 등으로 명문화되고..

제도화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십일조에 대하여 그것을 누구에게 바쳤으며..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었는가를 명확하게 기록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성경의 기록을 살펴 믿음의 조상들의 생활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십일조를 누구에게 주었으며..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는가를 유추 해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성경 이외의 세계역사에도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그런 것들은 일단 접어두고..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조상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면서..

아직 제사장이나 선지자 등..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여길만한 사람들이 나타나지도 않았을 그때는..

이 골치 아픈 십일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용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말썽많은 오늘날의 십일조문제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까지 다다랐다고 봅니다.
 

야곱과 쌍둥이 형 에서와의 갈등을 중단시키기 위한 미봉책으로..

그 부모는 작은 아들을 그 외갓집으로 보내기로 작정하고..

당시 부피에 비해 가치가 높은 향기름을 여비로 주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향기름이 가득 든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를 연상시킵니다)

야곱은 곤경에 처한 형을 교묘히 이용하여 장자권을 탈취하고..

장자권자인 아버지를 속여 장자가 받아야할 축복을 받아냈으나..

당장 복은커녕 고향에서 직선800km(2000리가 넘는 거리)의..

밧단아람 외갓집을 향하여..

도피의 여정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될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난생처음 나그네 신세가 되어..

불안하고 기약도 없는 머나먼 여행길에 나선 야곱은..

홀로 노숙을 하게 되면서..

오만가지 상념에 시달리다가 잠들었을 것입니다.(창28:11) 
 

머나먼 여정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겨우 잠든 야곱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나그네의 여정과 내일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상쇄시키는 언약을 주심으로써..

지렁이같이 연약한 야곱은 감격과 더불어 힘을 얻게 되었으며..

기름병을 의지하였던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결심으로..

자기의 베개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거기에 기름병을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자비롭고 은혜로운 생활상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조부와 아버지의 삶처럼 자기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서원을..

하나님께 맹서하였던 것입니다.(창28:10-22) 
 

그런데, 야곱이 눈에 안 보이는 여호와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맹서하면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했는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당시에 제사장도 아직 없었고..

야곱에게서 십일조를 받아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대상이 누구란 말입니까?

야곱은 여호와가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이셨습니다.(약1:27, 신16:14-17)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평상시 소득의 십분 일을 따로 모아두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곤란을 당하기 쉬운 나그네들을 아낌없이 대접했을 것이고(창18:1-8)

고아와 과부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을 발견할 때에..

그들을 아낌없이 도왔을 것입니다.(욥29::12-17)

후일에 율법시대를 거쳐 초대교회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사상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허황된 물욕과 명예욕으로 이 사상을 더럽혀온 자들이..

기독교회의 지도자로 자처해 오고 있었기에..

십일조에 대한 이상한 논란들이 발현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십일조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기독교회의 신앙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고난속의 이웃을 돌아보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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