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하여 악감정을 가지고..
온갖 악담을 서슴지 않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미움 받기를 자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인가 아리송하여 잘 모를 때는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해버리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안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을 경청하는 자들을 저주하는 자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지도 않는 신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기나 치는 무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그 죄를 반드시 물으신다]고 했습니다.(시34:15-22)
의인이라는 기준은 뭡니까?
하나님이 그 죄와 허물을 인정치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에 아브람은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위하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아브람에게 큰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창12:3)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인데 존재하다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으나 실존(實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소리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까?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두루마기를 입히듯 임하셨습니다.
성신으로 감동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 감동대로 입을 열어 고함치듯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선지자로 일컬었습니다.
선지자들이 몇 번 고함지르다가..
정치적 환경이 변하고 사회적 요구가 달라져서..
처음에 고함지르던 내용을 슬그머니 고쳐 외치거나..
내용을 바꿔 말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내용을 날마다 일관되게 반복하여 외쳤습니다.
선지자들 중에는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백성들이 좋아할만한 것만 말하고..
기분나빠 할 내용은 삼켜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참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감정이나 얼굴을 살피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나라와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선지자의 말을 불신하게 되었고..
때로는 선지자들의 생활태도를 문제 삼아..
거짓선지자로 매도하는 짓까지 서슴없이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으면 대우하였고..
자기들 사상과 이념에 반하면 권력과 세도를 이용해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하고..
심하면 죽이기도 했습니다.
실로 사람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시는 여호와의 말을 대신하던 자들이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람 눈에 보이도록 현현 하셨는데..
그분이 나사렛 동네에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입니다.
예수는 죄가 없으신 참된 사람입니다.
여호와가 사람이 되셔서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그 피 값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한 물건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 마음에..
그의 피를 뿌려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神)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에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시시때때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하고 행동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과거에 선지자들이 외쳤던 소리들을 마음에 떠오르게도 하시고..
생각나게도 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인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죄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시거나..
의로워지려고 노력하는 그 노력을 가상히 여기는 분이 아닙니다.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을 의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창15:6)
인간은 죄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인생이 육신의 삶이 계속 되는 한..
죄와 한 덩어리가 되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바울이 말하기를..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롬4:1-8)
믿는 의인은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삼으셨습니다.
기업이란 [먹고 살 터전]이란 뜻입니다.
믿는 의인들을 기업으로 삼아서 주변사람들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기업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품어 안은 나라는 복 받았으나..
싫어서 뱉어낸 나라는 망했습니다.
여호와의 좋은 약속을 믿는 사람이 기업입니다.
기업된 기독교인들을 대우하는 사람은 복 받아 잘됩니다.
까닭 없이 혹은 미운구석이 있어서 믿는 자들을 미워만 해도..
그는 저주를 자처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있어서 믿지 않는 자들도 더불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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