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아들이 어제 낮에 서울에서 있은 제 외사촌 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저녁때 집으로 왔었습니다.
딸도 같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같이 내려왔었습니다.
밤에는 네식구가 서재에서 인터넷을 접속한 채..
인도에 가있는 큰아들과 화상 음성 채팅으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세 녀석이 화면속에서 서로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낄낄거리기도 하고..
장난끼가 발동한 큰아들이 제 동생들에게 우스개소리도 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무슨 번역 건인지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잠시동안에 4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중에 한 전화는 1천만원짜리 번역 껀수를 제의받았습니다.
그런데 4월달에 학년말 고사에 패스해야하기 때문에 지금 시험준비 하느라고 여건이 안된다며..
그 큰 껀수를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돈도 좋지만, 그때문에 1년의 인도에서의 학교생활을 연장할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딸은 모처럼 만난 엄마 아빠 앞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재미있게 쏟아냈습니다.
유치원 선생노릇에 적응을 잘하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흐믓했습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안나오니까..
일요일쯤엔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는 소리를 듣고 웃었습니다.
막내아들은 얼굴이 비쩍 말라있었습니다.
몸도 호리호리해서 보기가 영 안쓰러웠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군대생활에 매여있는 놈이 새벽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벽4시에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싸들고 집을 나서면서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곧장 부대로 출근을 하였던 것입니다.
아침은 보나마나 먹는둥 마는둥 했을것이 뻔하고..
점심엔 반찬도 변변치않는 도시락을 까먹고..
퇴근하여 집에서 저녁밥을 손수 지어서 대충 먹든지, 아니면 외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애가 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사는게 고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들이 새벽기도를 마치고는 대개 아침에 잠을 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니면 아침에 잠을 안잘경우 저녁에 9시경에는 반드시 잠자리에 들어야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신앙의 척도가 될수는 없습니다.
새벽에도 잠이 오지않을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몰라도..
무리를 하면서까지 새벽기도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면서도 하루의 일과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해야합니다.
그러나 생활의 리듬이 깨질만큼 힘에 겨운 일이라면..
그것은 신앙의 행위가 아니라 종교행위이고 고행의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보혈을 뿌려주심으로써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방종을 경계하되 자유는 누려야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이상스럽게 들릴는지 모르겠다만]..
[네가 몸이 축나면서까지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옳지않다고 본다]..
[평소의 생활에서 꾸밈없이 튀어나오는 모든 언어가 곧 기도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을 때 그말씀의 의미는]..
[말씀을 들은 후에 그 말씀을 나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믿음이고]..
[평상시의 모든 말들이 곧 기도이며 긍정의 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아들은 조용히 머리를 주억거렸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 설교의 내용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말을 쏟아내는 삶이야 말로 복과 생명이 넘치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말할 때마다 자기 자신이 먼저 살아나게 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살아나고 그말을 듣는 주변환경이 살아나는 것]이라는 설교였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살인은 한사람을 죽이나 중상은 세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말들을 쏟아낼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말이 아닌..
자기 마음 속에서 나오는 대로..
합리적이고도 세상의 보편적이며 이치에 맞는 말들을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 즉 자기 생각대로 하는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들은 또 대부분 남을 평가하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개진할 때..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의견들이 더 설득력이 있는듯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들은 자기 속에서 나온 자기 생각에 따라 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 속에서 나온 [사람 생각]은 대부분 살리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의견들과 말들]이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 소리들은 때로 뻥까는 소리들로 들릴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그 소리들이..
자기가 내뱉으면서도 이중적인 소리가 아닌가 하는 괴리감을 줄수도 있습니다.
또한 마음에도 없는 흰소리로 여겨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포기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말하면 하나님이 그 말을 책임지십니다.
그 소리들을 [새 방언]이라고도 하고 [믿음의 말]이라고도 합니다.
그 말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출산에 대하여 이론은 통달했으나 경험이 없는 여자와..
이론에는 무식하나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자가 애 낳을때의 고통과 기쁨을 압니다.
그러므로 말할때 남을 중상하는 말은 버리고 믿음의 말만 해야 복을 받습니다.
나는 내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말들을 쏟아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행동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그 입으로 쏟아낸 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 비쩍마른 아들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새벽기도를 말렸습니다.
그리고 평소의 말을 고치라고 충고했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것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어떻게 보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을 불쑥불쑥 터뜨렸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기차를 타고 제 일터로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이 울컥거려서 이글을 씁니다.
딸은 만나면 밝은 미소로 재잘거리기 때문인지..
딸이 왔다가는 것에는 마음이 허전하지 않습니다.
어릴때 부모곁을 떠나 군대생활로 7년이란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막내아들을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짠합니다.
그놈이 신앙생활을 잘해보겠다며 고행을 하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고행하는 것을 과연 원하시겠습니까?
마음이 짠합니다.
'오, 나의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들 속쎡여? 웅? (0) | 2006.03.27 |
---|---|
하나님처럼 살게 하시려고.. (0) | 2006.03.26 |
가장 치명적인 죄, 불신하는 죄... (0) | 2006.03.16 |
춥고 배고프고 목마른자는... (0) | 2006.03.08 |
빛과 그리고 그림자... (0) | 2006.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