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예수를 위하여 받는 능욕..

순악질 의자왕 2019. 9. 28. 19:52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부모는 단호하게 징계를 하여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징계 받은 자식은 그래도 부모를 떠나지 않습니다.
남의 자식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남의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심하게 야단치면 도리어 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남의 자식은 열 번 잘하다가 단 한번 그 잘못에 대하여 책망하면..
섭섭해서 단번에 외면하고 돌아서 버립니다.
남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참된 성도는 아무리 야단맞아도 그 교회를 떠나지 아니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군지 알고 목회자가 누군지도 알기 때문입니다.
교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목회자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믿음이 자라기까지 헌신적으로 이끌어주고..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그렇게도 많이 노력하였어도..
어떤 쭉정이 같은 교인들은..
그 잘못에 대한 목회자의 한마디 책망에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떠나버립니다.
교회가 여기 한 군데 뿐인 줄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교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시겠습니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을 삼는다면..
그가 교회생활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이 있어서..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도 비난의 말을 듣다못해 지탄의 대상이 되어..
수치와 모욕을 뒤집어 쓰고 교회에도 심각한 누를 끼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책망을 듣고 징계를 받아 마땅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때는 아무리 야단을 심하게 맞았어도 교회를 떠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목회자와 교인들은..
함께 근심하며 아파하며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흠이 없이..
사람보기에 반듯한 모양새로 교회생활을 하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교인이기를 포기하고 불교로 개종을 하였다든지..
무속인을 찾아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면 이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몇 차례 권면하여야 하고..
한 두 마디 더 돌아오기를 권하여도 듣지 않거든..
더 이상 그를 위하여 기도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이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기 때문입니다.(요일5:16-17)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에 다시 살아나신 후 사십일을 이 땅에 두루 다니시고..
여러 사람을 만나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열흘 후에 성령이 사람들에게 내려오시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든 예수를 믿은 순간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거듭났다고 일컫는 것입니다.
피 없이는 생명도 없습니다. 피 흘리지 아니하고 사람이 생겨나는 일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피를 흘리심으로 내가 세상에 탄생하였습니다.
예수가 피를 흘리심으로 그 사실을 믿은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가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이 약속은 종이에 펜으로 쓴 편지가 아닙니다.
육신세계와 차원이 다른 영의 세계의 영원함으로 쓰고..
돌비석에 새긴 약속도 아니고..
육체가 있을 동안에 육신의 마음 밭에 기록한 약속의 편지입니다.(고후3:3)
예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편지가 편지노릇을 못하면 부패해 버리고 맙니다.
모세가 사명자로서 지팡이를 버렸더니..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여 모세를 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뱀의 꼬리를 붙잡으니 그것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편지로서의 사명을 저버리면 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편지역할을 잘하려고 노력할 때..
그것이 나의 지지자가 되고 위로자가 되며 의지할만한 지팡이가 됩니다.
사명자가 말씀을 저버리면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똥 묻은 발에 짓밟힙니다.
침묵기라고 하고 암흑기라고도 하고 신구약 중간기라고도 하는 400년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큰 환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기간 중에 위아래의 큰 나라들로부터 150년 동안 짓밟혔습니다.
말씀을 버리는 짓은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면서 욕먹지 아니하는 것이 장땡인줄로 잘못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부여잡고 몸부림을 치면서 욕먹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다가 받는 능욕과 해악은..
영혼의 그날에 얻을 영광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구원자)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히11:26)
교회 다니면서 받는 손해와 수치스러운 욕설과 모욕을 당하는 일을..
무척이나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종종 발견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신앙생활을 위하여 받을 수밖에 없는..
각종 크고 작은 손해들을 두려워 하는 것은..
믿음이 연약해서 이거나 아예 믿음이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날에 상 주시는 그를 바라보고 육신의 때를 살아야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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