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건은 복음의 완결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 어느 한 과정입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결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죄와 형벌의 사멸과 성령의 임재를 통한 완전한 연합이 형성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순간 예수와 내가 연합한 것입니다.
물질세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으나..
영의 세계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십자가의 사건을 믿은 순간..
[그가 못박힐 때 나도 거기 함께 있었고]..
[그가 무덤에 들어갈 때 나도 무덤에 함께 있었으며]..
[그가 부활하실 때 나도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함께 무덤에 장사되었던 율법은..
애석하게도(?) 부활하지 못했습니다.(롬6:1-5, 골2:12-14)
부활하신 예수가 승천하신 목적은..
나의 절대적인 변호자요 보호자이신 성령을 나에게 보내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은 그 때에 성령이 내게 오셔서 진실로 임마누엘이 성취된 것이며..
내가 세상살이를 끝내는 그 날까지..
나를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함께 계셔서 나를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더러운 나와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실 수 있느냐고요?
하나님이 깨끗케 하셨으면 깨끗한 겁니다.
예수 믿은 이후에 저질러지는 죄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거냐고요?
어려울 거 하나도 없습니다.
돌이키면 됩니다.
돌이키는 것이 회개니까요.
길을 걸어가다가 도랑으로 빠지고..
절벽으로 곧장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통곡하며 고함지를 필요 없이 간단히 몸을 돌려 방향수정을 하면..
그것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울고불고 악쓰면서 돌이켜야합니까?
그저 생각을 조용히 바꾸면 됩니다.
내가 회개를 이루기 위해서 금식기도를 하고..
작정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마치 사람의 노력으로 회개가 된다고 착각하기 딱 좋은 모양으로..
회개의 열매를 이루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성령이 내게 오셔서..
내마음이 그분의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어 하늘나라가 내게 이루어지고..
내 주변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그 열정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만 우리의 고민은..
주의 보혈의 은혜로 죄와 악의 길에서 벗어났어도..
금방 다시 잘못된 방향으로 어슬렁거릴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 안하려고 소원하고 노력하지만..
우리 속에는 죄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것이 조건만 맞으면 싹이 나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이점을 잘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기록에 나타난 성신의 역사하심과..
신약에 나타나시고 현재 우리에게도 나타나시는 성령님은 다른 분인가요?
아니요 같은 분이십니다.
다만 구약에 나타나셨던 성신은 사람 밖에서 역사하시다가..
사명이 다했다든지 죄악을 저지른다든지 하면..
그를 버리시거나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나타나신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타고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분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구약 사람들은..
천사들의 손에 의해 전해진 율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된 자들입니다.
천사들은 사람의 육체를 알지 못합니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입고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던 자들입니다.
즉 율법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천사에 의해 선포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고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만..
거룩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는 노력이 미흡하면..
나쁜 결과가 그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율법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서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거룩을 계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살던 이스라엘이 저주받고 멸망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율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지 아니하고..
육신을 체휼하신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천사로 전해진 율법은 사랑도 없고 긍휼이 없지만..
아들로 말미암은 복음은 사랑과 긍휼이 넘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셨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은 복음이 복음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보화는 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유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팔아 던져서 나를 사셨습니다.
아들을 죽였다면 그 모든 소유를 던진 것입니다.
아들이 죽었다면 모든 소유물도 죽었고 ..
그가 다시 살았다면 모든 소유물도 살아난 것입니다.
아들이 가는 곳에는 모든 소유물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피 흘려서 우리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시되..
십자가에서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죄는 법적인 문제입니다.
법을 무시하고 감정에 매달려 울고불고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법에 따라서 처결되어야할 사안을 놓고..
가슴을 치며 울고불고 빌어서 사면 받으려고 한다면..
참으로 딱하고 어리석은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아들입니다.
딸들도 아들로 대우하십니다.
말로는 [아들]이라고, 상속자라고 떠버리면서..
실생활에서는 [종의 종]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 발견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율법을 행하여 의로워지려고 하는 자들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 던져서 생명과 복을 받게 하려 하였더니..
그를 무시하고 그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짓거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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