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나라가 망하고 국민이 빈천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원인을..
성경은 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을 등지고 서면 내 앞은 어둠이 드리워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믿음의 조상들은 시편을 통하여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시119:105)
북이스라엘이 BC721년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 의해 멸망하였고..
이어서 BC 586년 남유다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강성하던 나라가 힘이 약해지니..
강대국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고..
또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거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다가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였던 것이..
북이스라엘의 처지였습니다.
앗수르는 점령지(사마리아)의 연속적인 반역을 잠재우기 위해..
초토화 작전을 구사하여..
국가기간시설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쓸만하다 싶은 인물들이나 기술자들을 모조리 사로잡아갔고..
사마리아 땅에는, 속칭 [남은 자들]로 불렸던..
농부들과 노동자들을 남겨두어 비참한 생활로 연명하도록 하였으며..
앗수르제국은 정책적으로..
제국내의 범죄자들을 사마리아 땅으로 이주시켜 살도록 하여서..
그 결과..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도 사마리아는..
더 이상 이스라엘 냄새가 풍기지 않는 잡족으로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려야 하고..
잘나갈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아 교만이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도..
유다왕 히스기야는 늦게 얻은 아들을 너무나도 버릇없이 길렀고..
그 아들 므나쎄는 안하무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보여 말씀을 버리고..
하늘을 쳐다보지도 않고 땅만 바라보며 기고만장하고 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라는 회초리를 들어 유다를 치시기로 결정하시고..
선지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유다에 전하셨습니다.
엇나가는 아들을 향하여 회초리를 들었을 때..
아들이 순순히 초달을 받아들이면..
참회하는 자식, 효도하는 자식으로 여겨져서..
부모는 힘껏 회초리를 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노기 띤 아버지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아 분질러버린다면..
그 아들은 더 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되어..
아버지의 진노를 폭발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일어나 외쳤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회초리이다]..
[항복하여 당분간 고생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하나님이 회복시키신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말은 매국노의 말로 들렸을 뿐이었습니다.
선지자들마다 큰 고초를 겪었으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였습니다.
마침내 반항하던 자들은 모조리 처참한 몰골로 죽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항거하고 도망치다가 잡혀서..
눈앞에서 왕자들의 목이 잘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어서 두 눈이 뽑히는 참혹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그 전에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 왕에게 미리 항복하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으로 끌려가 실로 37년이란 긴 세월을 복역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지낸지 실로 37년 만에..
바벨론 왕의 마음이 바뀌어 여호야긴 왕을 사면 복권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의 모든 분봉 왕들보다도 가장 높은 지위의 왕위에..
그를 앉혔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신앙생활하며..
저 하늘의 좋은 것들을 약속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행복해 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감격에 겨워 울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길로 들어서서 헤맬 때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는 죄와 악행을 일삼아 사는 일이..
믿는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흔합니다.
믿는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도..
사람보기에 안 그런체 할뿐..
그 속에 감춰진 모습들을 들여다보면 추악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말씀을 통하여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고 살라고..
그렇게 호소하시는데도..
여전히 땅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땅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여로보암의 길이고..
아합의 길이며..
므나쎄의 길이고..
시드기야의 길이라고..
하나님이 성경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악인들의 길을 걸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우리가..
여로보암이나 아합이나 므나쎄나 시드기야가 받았던 징계를 면한 것은..
순전히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날마다 반복적으로 그런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괄약근이 약해서 자기의지와는 상관없이 똥이 질질 흘러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지와 상관없이 순간순간 죄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로마서를 통하여 고백하기를..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덮어주셔서..
우리가 날마다 밥 먹고 죄를 지으면서도..
생명과 복과 선물을 넘치게 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 삼아..
그 말씀만 따라가는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훈련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떤 문제와 맞닥뜨리던지..
말씀만 따라가는 훈련이 연약한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이 훈련을 잘 받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궤를 메고 범람하는 요단강에 발을 내딛는 제사장들처럼..
과감히 용기를 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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