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양치는 목동출신으로서..
한 민족 전체를 다스리는 지위에 올랐던..
입지전적 (立志傳的)인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사람의 죄인 됨과 무능한 존재임을..
처절하게 인식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시편51편 참조)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의지하고 살았던 그 배경을 유추해 볼때..
그 아버지 이새의..
철저하고 독실한 신앙심의 발로(發露)였다고 보는 것은..
하나님이 성경말씀을 통하여 다윗을 칭찬하실 때마다..
축복의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 아버지 이새가 들먹여지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때..
어찌 보면 그는 대범하지도 못하였고..
실수투성이였고..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때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전전긍긍하면서 나약한 모습도 그렇게 많이 보여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나라를 얻고 왕위가 견고해지고..
향내 나는 나무로 궁궐을 짓고 호화롭게 지내면서..
문득 하나님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에 두고 자기만 호화로운 궁궐에 사는 것이..
죄송하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 성전을 건축하려고 생각하고..
그 일을 하나님께 기도로 고(告) 하였던 것입니다.
그 기도에 감격하신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평소의 전전긍긍하던 염려와..
버림당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과..
안팎의 모든 근심을 해소시켜 주시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약속으로 안겨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기도 몇 마디가..
겸손의 모습으로 하나님 눈에 비쳐졌고..
다윗은 존귀의 극에 달하는 명예까지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삼하7:1-17)
흔히 간증할 때 자기자랑만 신나게 하고 끝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처음에 조심스럽게 간증을 시작하지만..
어쩌다 보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노력했더니]..
[하나님이 이런 복을 주셨다]정도로 생각하기 딱 좋게 진행되어..
뒷 마무리가 영 개운치 않은 것입니다.
간증에서만큼은..
나의 못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좋습니다.
나에게서 나타난 좋은 것들이..
비록 나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나타났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는..
결코 좋은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고백하기를..
자신의 못난 것과..
무능함과..
어리석은 것과..
수치스러운 것을 숨김없이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천한 자기를 들어 존귀한 자리에 앉히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사랑이 많으심을 노래하였습니다.
다윗이 읊은 시에 비하면..
이 땅에 시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시는 조잡스럽기가 짝이 없습니다.
다윗의 간증에 비하면..
이 땅의 유명한 간증인들의 어떤 간증은..
참으로 추악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시51:1-19, 103:1-22참조)
소문을 듣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들이..
이 땅에는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확인도 안된 풍설을 절대적으로 믿은 사람치고..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왕하19:7)
믿는 사람도 때때로..
풍설을 듣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짓을 벌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이루어진 사실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에 의해서 바꿔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판단하기에 사실인 것 같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바꿔 버린 것도 모르고 뒷북치는 일입니다.
바울이 사울로 불려질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눈뜬장님이 되어 심각하게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고..
성령님이 아나니아에게 감동하셔서..
[가서 사울을 만나 안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나니아는 성령의 감동을 신뢰하기보다..
그 말씀을 반박하며..
소문을 더 믿고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행9:10-14)
그러나 아나니아가 훌륭했던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후에 자기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으로 시키신 일을 잘 수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형제들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이단으로 정죄해버리는 것은..
참으로 유치스럽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눈앞의 상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보고 들은 것만을 절대적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도 [보고 듣고 깨달은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지식으로 굳어져버리고..
교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면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고 짓밟지 않을 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목숨도 초개같이 던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은..
이순신이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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