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들으라, 예수를 원통하게 하는 자들아...

순악질 의자왕 2012. 9. 1. 11:03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자기 몸을 찢어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롬8:1-2)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는 더이상 율법의 제재를 받지 아니합니다.

우리 인간은 생겨 날 때부터 죄와 불가분의 관계로 생겨났기에..

연약하여 자기 힘으로는 죄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율법을 자기 앞에 세워놓으면 저주와 형벌이 따를 뿐이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복과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어 피를 흘리심으로써..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길을 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순간..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니 비로소 임마누엘이 성취된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성취 되었다면 이제 율법과는 영원한 이별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법의 적용을 받는데 [성령의 생명의 법]입니다.(롬8:1-2)

 

그런데도 여전히 율법을 자기앞에 세워놓고 교회를 다닌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라고 할수 없고 종교생활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율법주의로서..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그를 억울하게 하고 분하게 하는 짓]입니다.

그것은 또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헛되게 하는 짓]입니다.

그는 자기 몸을 찢어 의문에 속한 그 율법을 폐하셨습니다.(엡2:14-15)

그러므로 큰 희생을 치르신 예수를 탄식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박통시절에는 통행금지법이 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고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으라는 법이었습니다.

반정부활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저질스러운 법이었습니다.

긴급조치를 번호를 매겨가면서 연달아 내놓고 국민들을 억압하였고..

헌법을 개정하여 [유신헌법]이라는 괴물도 발효시켰습니다.

참 살벌한 시절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치를 떨었을 그 법도..

법을 낸 자가 죽으니 다 사멸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통행금지법이 무서워서 밤에 밖을 나돌아다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니거나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조선사람들을 손쉽게 다스리려고..

헌법을 만들어 발효시켰습니다.

그들이 패망하여 물러가니까..

그 법을 무서워 하던 조선인들이 그 악독한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해방이라는 말은 자기를 옭죄던 악법이 그 권능을 상실하였다는 소리입니다.

더이상 일제시대의 법에 제재를 받지 아니한다는 소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어..

피 흘려 폐하신 율법의 제재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라는 소리입니다.

법이 폐기되었으니 죄와 상관없이 생명과 복을 선물로 넉넉히 받는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하나님이 무덤에 묻어버리신 율법을 파내어 제 앞에 세워놓고..

스스로 그것의 제재를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골2:12, 14)

마치 그래야 그것이 참된 영적생활이고, 참된 신앙생활이고..

참된 교회생활이라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은 해야..

그것이 거룩한 모습이고, 경건이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속은, 한없이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누가 멋있게 보이는 철학과 말재주의 감언이설로..

너희의 영혼을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골2:8)

 

바울선생은 고린도 전서 1장을 통하여 밝히 말씀하시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18)

[십자가의 도]라는 말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고난을 받으셔서 만드신 생명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몸을 찢어 피를 흘려 만드신 그 길은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이 담당하신 큰 일입니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가겠다며..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크게 오해해서 나온 왜곡의 길입니다.

믿는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은 구원을 위한 고난이 아니고..

주와 복음의 편만을 위하여 기꺼이 받는 고난입니다.

하늘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구원을 위한 고난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생활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길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유업으로 누리는 일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깊이 되돌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에 좋은 일들이 저절로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그의 신앙은 추상적이 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상이 땀을 흘린다거나 성모상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거나 하는 소리들이..

종종 있어왔습니다.

그게 기적입니까?

그래서 그것이 어쨌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적은 그런 유치하고 저질스러운 것들이 아닙니다.

그의 기적은..

우리 실생활에 매우 좋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현실적이고 유익한 일로 나타납니다.

얼키고 설킨 문제로 고통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분이 그 문제에 개입하시고..

사람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문제가 저절로 풀려서..

좋은 일로 나타나는 것이 믿는 자들이 경험하는 기적입니다.

 

창세기 2장에는..

에덴에서 발원하여 네갈래로 나누어진 강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창2:10-14)

아담이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신 것들입니다.

가난에 찌들어있던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생활 속에서 저절로 부요하게 됩니다.

부자가 되기위해서라는 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만..

진실로 예수 믿으면 저절로 부요해지기 마련입니다.

비손강물이 예배 때마다 말씀을 선포될 때마다 그 복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비손이라는 말은 풍요, 또는 부요를 뜻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마다 기혼강이 그 앞을 지나 흐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며..

은혜를 부르짖으면서 사람의 노력을 강조하는 설교자들이 많습니다.

달변과 감칠맛 나는 화술로 하나님의 은혜를 왜곡시켜서..

[율법을 행함으로 사는 것이 은혜]라고 말하는 것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짓입니다.

기혼이라는 말은 은혜라는 말이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예배때마다 목사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

그 말씀을 근거하여 마음에 소원이 생기게 되고 그 소원들이 말이 되어 나오게 됩니다.

그 말들은 반드시 결실하게 되고 그 결실은 화살처럼 빠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 그의 능력이 덧입혀집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세상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고전1:18)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육신의 때를 살면서 하늘나라를 힘입고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셔서 누리게 하시고..

나누게 하시고 기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이고 복음이 무엇인가를 바르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교회생활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들을 이롭게 하며..

자신도 행복한 육신의 때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너무 쉽고 헐렁하게 느껴지니까..

[무슨 구원이 이리 헐렁해?..

이게 아니고 좀더 그럴싸한 틀이 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속아서..

일평생 고행하다가 저주와 징계가 잇달아 터지고..

자기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자기처럼 불행한 일생을 보내게 하는 선생들과..

그런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종으로 살면 평생 고생이고 아들로 살면 평생 행복입니다.

종은 어리거나 장성했거나 조금만 잘못해도 크고 작은 징계를 받으나..

어린 아들은 크게 잘못해도 걱정없습니다.

아버지가 다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마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