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스승의 날 선생님이나 학부모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범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물을 받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어딘가 께름칙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찜찜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고 무엇인가 개운치 않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정례화 되다보니..
받는 쪽에서는 기대하는 구석이 있을 것이고..
주는 쪽은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도 하고 안할 수도 없어서 억지로 하려다 보니..
짜증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물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 형편의 사람들은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의 사람들은 위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부모로부터 좋은 것, 큰 것을 선물 받은 선생님은..
아무래도 그 아이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자칫 소외감에 젖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원래 스승이란 말은 민초들의 생활 깊숙이 개입하여..
나아갈 방향을 정해주던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선생님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지식을 전수해 주는 교사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인성이 개떡 같은 사람이 기억력만 뛰어나서..
수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때로는 훈육이라는 미명아래 체벌이 지나쳐서 폭력교사로 드러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제자를 대상으로 성희롱,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폐건축자재를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방치해 둔 것은..
전적으로 학교의 잘못입니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운동장에서 놀다가 그 폐건축자재에 넘어져서..
녹슨 대못에 발을 찔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학교에서 책임지고..
다친 아이를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서 치료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담임선생은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가 다쳤으니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하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내가 화가 나서 [아이가 다쳤으면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받도록 하고]..
[그 후에 학부모에게 통보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생이 되레 화를 내며..
[아무개 아버님 당장 학교로 오세요!]하고 명령하였습니다.
[내가 선생님의 부하냐! 오라 가라 하게!]하며 옥신각신 말싸움 하다가..
지방교육청에 항의하는 지경에까지 사건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교사가 다 있느냐]며 길길이 뛰니까..
교감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거의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교사는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도 5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오늘날까지 잊히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걸핏하면 대나무 잣대로..
손바닥이고 등짝이고 머리고 가리지 않고 때리던 선생님입니다.
숙제를 안 해서 맞은 것은 그렇다 쳐도..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맞은 것은 좀 억울했습니다.
화나시면 얼굴이 시뻘개 진채 입을 앙다문 그 얼굴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질병을 앓고 있던 제자를 위해서..
학교정원과 학교림 동산을 뒤져..
정성을 다해 채집한 약재를 한소쿠리나 모아 안겨주시던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상황을 살펴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겠다 싶으면 위해주는 체 하고..
약간이라도 당신의 명예에 손상이 가겠다싶으면..
냉정하게 거절하고 뿌리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제자를 위해..
사비를 털어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교수목사님도 계십니다.
그 선생님은 내가 목사가 된 후에도 못난 제자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며..
제자가 못난 소리 덜떨어진 소리를 해도..
욥의 세 친구들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는 대신..
덮어주고 감싸주며 위로와 용기를 주시던 선생님입니다.
목사는 선생입니다.
교인들에게 절대적 이로움을 끼치는 선생이어야 마땅한데..
이로움을 가장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목사도 있습니다.
나도 그런 목사들 중의 하나인지 가끔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사람 됨됨이 어리석고 아둔해서..
조리 있고 부드러운 말과 바른 행동으로 교인들을 지도하고 감독하지 못했습니다.
스승의 날 없애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이 무렵만 되면..
분에 넘치게도 남몰래 선물을 챙겨주는 교인이 있습니다.
혹시 해마다 이때가 다가오면..
마음에 부담감을 잔뜩 짊어지고 있지나 않은지 염려됩니다.
랍비는 유대의 율법학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에는 로에와 나비로 불리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로에는 선견자를 의미하고 나비 또는 랍비는 선지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미리보고 말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기원 전후의 랍비들은 백성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즉시 대답할 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목사들도 이 랍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태아의 때를 지나 육신의 때를 살고..
육신의 때가 지나고 나면 영혼의 때가 열립니다.
영혼의 때를 위하여 육신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들이 목사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에 회계할 것들이 있음을 늘 생각하면서..
이 육신의 때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선생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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