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 주일..
1.4후퇴 때 후퇴하는 미군군함을 얻어 타려고..
함흥 항에 물밀 듯이 몰려든 인파들 중에는..
금은패물들을 버려두고 족보를 가슴에 품고 월남한 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옛 어른들이 족보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상 때부터 써내려온 가문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도 한참 변해서 족보에 대하여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족보를 정리하여 다시 기록할 때에..
주최 측에 후원금을 많이 내는 쪽 사람들은 중앙에 배치해 주고..
후원금을 내는 데에 인색하다 싶으면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괴이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족보에 대한 열기가 점점 시들해지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된 것은..
세상이 변하여 돈이 양반이 된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양반과 그 후손들만이 성씨가 있었다고 합니다.
양반이란 왕의 좌우에 늘어서서 국정을 쥐락펴락하던 신하들을 가리킵니다.
왕을 중심으로 동서를 나누어서 도열하였는데..
동쪽에 늘어선 신하들을 문반 혹은 학반이라고 하였고..
서쪽에 도열해 있던 신하들을 무반 혹은 호반이라고 하였습니다.
문반의 신하들은 이론과 학문이 출중한 정치인들이었고..
무반의 신하들은 용감무쌍한 군인들이었습니다.
또 문신들의 흉배에 두루미를 수놓은 관복을 입었기에 학반이라고 하였고..
무신들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은 관복을 입었기에 호반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위세는 실로 대단하였데 그 후손들은 소위 금 수저로 불릴 만큼..
태어날 때부터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족보란 명예의 대명사였을 것입니다.
몇 대조 할아버지는 나라의 영의정 있었고..
몇 대조 할아버지는 병조판서였다는 식으로..
가문의 영광을 족보에 떡하니 기록하여서 후세에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반면 소위 상놈이라고 불리며 멸시 천대를 받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씨가 없었고 그냥 싸구려 같은 이름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똥이, 만득이, 마당쇠, 삼월이 오월이, 분례 등등 그들이 바로 서민들입니다.
이조시대의 인구 절반가량이 이러한 노비신세였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천박한 부류의 인간들로 짐승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살던 그들에게는..
성씨가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서민들의 딸들 역시 성씨 뿐 아니라 변변한 이름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 성씨는커녕..
족보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경천동지할 변고가 생겼습니다.
조선이 멸망하고 일본이 나라를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조선민족을 착취할 목적으로 호적정리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면사무소에 호적을 만들라고 하였는데..
일본 놈들이 조선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성씨가 없음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성씨를 붙여주기로 결정하고 창씨를 독려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씨가 없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섬기던 쥔마님의 성씨를 호적에 등재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양반들의 족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족보가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마다 다 족보가 있었습니다.
그 족보가 창세기를 비롯하여 구약성경 곳곳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복음에 이 족보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양반들의 족보는 조작된 족보가 많지만..
성경의 족보는 조작이나 왜곡이 없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훌륭한 사람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기록이 수두룩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의 몸 된 교회에도 족보가 있습니다.
족보 없는 교회는 교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교인명부, 공동회의록, 당회록이 없는 교회는 족보 없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때에 어떠한 인생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떠한 인생여정을 걸어갈 것인가를 날마다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생활 역시 신앙생활의 개인적인 역사를 써내려가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어떠한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교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날에 하나님 앞에 서서 부끄러움과 수치와 책망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칭찬과 함께 큰 상이 안겨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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