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순악질 의자왕 2017. 11. 25. 18:26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하는 것을..

마음에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로마의 권력에 협력하고 그들과 타협함으로써..

정치와 명예와 경제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상 정치권력의 달콤한 맛에 깊숙이 길들여져 있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사두개인들이라고 하는데 ‘사독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시대의 제사장 사독을 흠모하며 그의 발자취와 그의 가르침을..

존중히 여기고 생활 속에서 그의 숭고함을 나타내고자 하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내세에 대하여 철저히 부정하는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 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싫어하였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를 엄격히 금지하였습니다.

예수부활의 도 전파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자기들이 가진 권력으로 제자들의 전도를 극렬하게 막고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쩔 것입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과 무덤에 묻힌 후..

사흘에 다시 살아나심을 전파하면서..

그 예수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온전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행3:1-10)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하여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을 이해하려면 신구약 중간기 400여 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 노릇을 할 때에..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고..

나머지 열 지파가 반역으로 똘똘 뭉쳐서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으로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시작부터 대단히 잘못된 것은..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인본주의적 신앙과 정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더하거나 빼고 조작하여..

인간들의 편리에 따라 종교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왕상12:25-33)

이 후로 여로보암의 그 잘못된 전통에 따라..

후대의 왕들마다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나타내었습니다.

나중에는 시돈과 두로의 거짓종교를 수입하여..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계속하였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듣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다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북쪽형제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반역의 삶을 계속하다가 멸망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쪽나라 유다 또한 같은 짓을 반복하였습니다.


역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람이 역사를 돌이켜 살펴보면서 교훈을 삼아야 할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쓴물을 받아 마셨던 남 유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의 길로 내달았는데..

그것은 저 유다왕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이하여서..

그 일로 하나님이 통치하셔야 할 유다가..

우상숭배의 도가니로 변모케 한 일입니다.

여호사밧의 그 정략결혼정책의 큰 실책으로 말미암아..

남 유다마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단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중세에 로마교회의 주교가 교황이라는 왕관을 쓰고 앉아..

저 옛적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하던 짓을 저질렀습니다.(계22:18-19)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첨가하거나 삭제해서 성경말씀을 조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중요한 잣대와 기준삼아..

종교생활을 지도하던 자들이 가톨릭입니다.

그 잘못된 전통을 분별없이 수용하여..

교회에서 가르치고 장려하는 개신교 또한..

저 옛적의 남 유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사람 살 곳이 못되는 생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 자손들..

하나님이 아무리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호소하였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을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굶기고 모욕거리가 되게 하고..

심지어 속이 빈 통나무에 넣어 톱으로 썰어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기가 막혀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그 하던 버릇대로 잠시 동안 내버려 두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무리 악독한 짓을 저질러도..

하나님께서는 못본체 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정판이 ‘암흑기’라고도 하는 ‘신구약 중간기’입니다.(롬1:18-32)

 

그 신구약 중간기를 왜 암흑기라고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희망의 빛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생지옥과 다름없는 400여년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땅이 남의 나라 전쟁터가 되어..

150년 동안 아비규환의 고통 속에 있어 울부짖어도..

하나님이 돌아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늘이 닫혀서..

그들이 살던 땅이 슬금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저주받은 땅에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있는 사람마다..

옛날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잘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받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희망의 빛을 본 것은..

그들이 무슨 특별한 행동을 해서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작정하신 징계의 기간이 끝나서입니다.

마침내 구류의 때가 끝나고..

흑암에 앉은 백성들의 머리위에 밝은 햇빛이 비취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미리 말했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나시면 그가 공의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절대적 기준이 율법으로가 아니고..

새로운 기준이 서고 새로운 잣대가 시온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들이 저절로 생김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오면 기도하고 즐거움이 오면 찬송해야 합니다.

당신이 받으실 영광과 당신이 받으셔야할 찬송을..

우상 따위에게 다시는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4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