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거래하자는 것입니까?

순악질 의자왕 2007. 6. 4. 07:45

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 앞에서나 목사 앞에서나 교우들의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하는 것이 믿음으로 말하게 되고..

그 말한 것이 삶에서 현실로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돈에 대한 욕심이나, 일에 대한 욕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우월감과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말씀을 버렸을 때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도 부담스러워지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워지고..

길거리에서건, 어디서건..

목사나 교인들과 맞닥뜨리는 것조차 껄끄러워서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여러 가지 욕심에 대한 끈을 선뜻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잔머리를 굴리게 되고..

[신앙생활도 좋지만 먹고 살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위를 하면서..

양다리를 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교회에서의 자기의 위상이 하락되는 것을 못견뎌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죄책감에서 헌금으로 만회해 보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을 교회의 중추적 인물로 여겼다가는..

목사가 그때부터 발목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보다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절대적인 잣대로 여기고..

그를 귀하게 여겨야 교회가 교회다워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거래관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공생관계도 아니고..

어느 한쪽의 기생관계는 더욱 아닙니다.

부모자식의 사이처럼 떼려야 뗄 수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림자인 이 땅의 부모는..

형편과 처지에 따라 더러 자식을 버리는 경우도 있으나..

실체인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이 어떤 어려운 형편을 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 사람이 어떤 형편과 처지이든 그분이 사람을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아담도 죄를 짓고 난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던 것을 우리는 창세기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넣어 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생명과 속성을 우리에게 넣어주셨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거나 폐기해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불경스러운 헛소리처럼..

그분은 사람을 불완전하게 지으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형상을 따라..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게 지으셨습니다.

당신의 속성대로 완전한 자유의지를 사람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지으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아버지와 형제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뿌려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셨고..

그 거룩한 마음에 성령으로 좌정하신 분입니다.

사람이 육체와 영혼이 갈라져서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늘 함께하시고 떠나지 않는 분입니다.

수시로 우리 마음을 건드리셔서..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을 떠오르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도 하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수시로 기적을 창출하시되..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과..

그 믿음의 말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수시로 죄짓고 악을 행하지만..

예수 이름으로 그분 앞에 죄악을 자백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덮고 허물을 감추시는 분입니다.

원수마귀의 참소로 하여금 힘을 잃어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정도로 우리를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육체의 때가 사람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육체의 때가 고난의 때이기도 하나..

장차 나타날 영광의 때를 준비해야 하는 귀중한 때이기도 합니다.

씨앗을 심고 기다리면..

모든 조건이 완전하게 갖추어졌을 때..

움이 돋게 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아름답고도 영광스러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믿는 자들의 이 땅에서의 육체의 삶은..

욕심이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히 살고..

삶의 푯대는..

절대적으로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새로운 세계에 맞추어 놓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최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는 일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의 바다 가운데서도..

간간이 좋은 일들이 눈앞에 저절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장차 있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7년의 혼인잔치를 예표하는 일입니다.

7년 혼인잔치와 같은 그 잔치는..

천년왕국의 아름다움을 예표하는 것이고..

천년왕국은 영원한 천국과 영생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표란..

장차 있을 아름다운 세계에 대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환란 가운데 있는 자들의 힘을 돋우기 위하여..

조금씩 맛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완전히 마감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믿는 자들을 옮기셔서..

거기서 더 좋은 일을 만나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려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믿는 자들의 신앙생활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