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신 것은..

순악질 의자왕 2017. 12. 23. 17:43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암흑기 400년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로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어서..

마치 캄캄한 암흑 속에서 목적도 없이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던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한줄기 강렬한 빛이 비취는 것과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일반대중을 위하는 척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긁어주는 척만 할 뿐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민들이 간접세금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하고 있어도..

자기들이 정한 계획과 목표 때문에 국민들의 신음소리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밥그릇은 철저히 챙깁니다.

온갖 특혜와 특권은 꼼꼼하게 챙깁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있어온 일입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습성은 고대나 현대나 마찬가지이고..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통치받기를 싫어하여 하나님의 품을 떠나..

제 뜻에 따라 제 생각대로 살고자하여 하나님의 그늘을 벗어나기를 반복할 때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 돌아오라고 외치게 하셨습니다.

귀찮게 한다며 선지자들을 박대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며 선지자들을 능욕하고..

그들의 외치는 소리들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꼴 보기 싫다며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을 외면하고 홀대하고 슬프게 한 것은..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홀대하고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외면 받은 당신의 심정이 어떤지 알게 하시려고..

잠시 동안(사백년) 눈감고 귀를 막은 채 외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그 무렵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의 초대황제였습니다.

본래 로마는 공화정으로 오늘날의 국회격인 원로원이 정치를 하였는데..

아구스도가 황제에 등극하여 국가와 속주들을 통치하고 다스렸습니다.

황제의 통치계획에 따라 모든 로마의 국민들과 속주의 주민들은 세금을 바쳐야 했고..

오늘날의 주민세와 같이 인두세를 거두기 위한 황제의 명령에 따라..

2등 국민 유대인들도 각기 고향으로 가서 족보를 찾고..

호적에 이름을 등재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요셉은..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의 베들레헴(빵집)으로..

호적에 이름을 등재하러 갔던 것입니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어수선한 환경에서 몹시 괴로운 가운데..

짐승우리에서 아기를 낳아 보자기에 감싸고 짐승밥그릇에 넣어둔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했을지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유대인들의 신세가 춥고 배고프고 초라하고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때에..

마침내 감고 막으셨던 하나님의 눈과 귀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열리자 자기 백성의 참상을 보셨고..

비통한 신음소리가 마침내 하나님의 귀에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은 피를 흘릴 수가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피 흘릴 수 있는 육신을 입고 사람의 아기로 나타나셨습니다.

젖먹이 때부터 33년의 세월동안 육신의 때를 경험하시면서..

사람이 육신의 때에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인지..

구구절절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때가 되기도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형편과 처지를 목도하실 때마다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고..

민망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고쳐주셨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낫게 하셨고..

만날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재창조의 역사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날로 험악해져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어렵게 바꿔지고 있고..

진실 되게 살아갈 수 없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온 세계가 복음이 전파되어서..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는 자들마다 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비하신 생명과 복을..

다 함께 받아 풍부하게 누리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선한 행실로 서로 유익하게 하고..

서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행복을 나누며..

영혼의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정 반대로 바꿔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먼저 받고 풍요를 누리던 유럽과 아메리카와 아시아가..

등 따습고 배 부르자 하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독실한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희귀하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속화되어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육신의 때가 다하기까지 믿음을 굳게 붙들고 있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걱정스러운 지경입니다.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과연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탄식이 새록새록 생각날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놓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눈에 보배롭습니다.

삶의 초점이 경제에 맞춰져 있던 것을 바꾸어..

영혼의 그날을 바라보는 자세로 삶의 초점을 바꾸어야..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고 그런 사람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귀가 예민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