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장차 받을 상을 바라보고..

순악질 의자왕 2017. 12. 30. 19:45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무한정 베푸시는 은혜의 때를 살아왔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난 행위를 저질렀을 때에..
하나님은 인생채찍 사람막대기로 잠시 쓴맛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이키도록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율법을 잣대삼아서 죄의 유무를 정하셨고..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의(義)되신 예수를 잣대삼아서 죄의 유무를 판단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이방민족이 득세하여 이스라엘을 혹독하게 다스렸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을 떠나면..
원수마귀가 그를 잡아 간섭하고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시들의 귀를 고통스럽게 하는 선지자들을..
때리고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 손발을 묶어 자유를 박탈하고..
심지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400여 년 동안 저들을 유기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하나님은 눈과 귀를 막은 것처럼 수수방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징계를 하십니다.
속히 하나님 품으로 돌이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징계하시고 꾸지람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잘못을 저질렀어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 아들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징계도 아버지의 은혜의 한 방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징계는 현실에 안주하던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마다 징계하시고 그가 기꺼이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얼마나 안심이 되게 합니까!(히12:6)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님이 정하신 은혜의 때는 저물게 될 것입니다.
은혜 베푸시는 기한이 끝나고 나면 서릿발 같은 냉정함이 임할 것입니다.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것은 사람에게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도 징계가 없는 것처럼..
공허하고 쓸쓸하고 무섭고 외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마음을 확정하여 행하는 대로..
그대로 되어져 가는 날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불의를 좋아하며 하나님을 떠나서..
잔인한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맹수와 같은 거칠고 포악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은 물어뜯고 짖어대는 들개처럼..
주변사람들을 향해 사납게 대들면서 물어뜯는 악인들이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더럽고 구역질나는 것과 신선하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구분이 안 되어서..
아무것에나 입을 대고 먹고 마시고 맛을 보고 입술과 혀를 놀려..
괴악한 쓰레기들을 쏟아내는 자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버릇 가르치거나 교화시킬 선생도 없고..
그들을 제제할 능력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그 가운데서 영영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그 마음에 하나님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서입니다.


육신의 때를 선을 행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마음에 확정하고 소원하는 자들은..
그 마음에 결심한 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마음 중심에 의로우신 예수가 기준이 되시고..
선악 간에 잣대로 자리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때가 다하기까지 선행을 행함으로써..
영혼의 그날에 받을 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생활로 자기 마음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죽음이 목전(目前)에서 어른거려도 개의치 아니할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로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려는 그 결심이 확고부동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힘주시고 능력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금 이 시간 마음에 어떤 결심을 품고..
그것을 확고부동하게 굳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짧은 인생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동안..
영원토록 긴 영혼의 때 그날의 아름다움을 마련해 나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기 위해..
주인으로부터 은 한 므나씩 종자돈을 받은 종들과 같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온 주인이 회계할 때에..
어떤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어떤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어떤 종은 장사를 하지 않고 종자돈 한 므나 그대로..
주인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눅19:11-27)
우리는 지금 자신의 교회생활을 상기하여 보아야 합니다.
세상일에 분주하여 주와 복음을 위한 일은 뒤로 미루어 놓고 살았지 않았는가를..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경제를 자기 삶의 중심에 올려놓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일한 대로 갚아주시는 절대자가 눈앞에 다가와 계십니다.
생활의 중심에 놓여있던 경제를 지금 즉시 아래로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사명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으면..
하나님 앞에서 자세를 고처잡고 정신을 차린 후에..
지팡이를 다시 잡은 모세처럼 사명을 다시 찾아 붙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