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용서와 탕감과 대속의 문제를 놓고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웃과의 갈등, 같은 교회의 교우 간에 명예 적 문제로 발생한 갈등..
교회생활 가운데 헌금과 봉사와 헌신의 크기에서 온 시기와 질투로 생긴 분쟁..
이러한 여러 가지 상처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고 앙금이 쌓여..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일들이 종종 발견됩니다.
때로는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 미움이 극에 달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문제의 완벽한 해결은..
당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 앞에 무릎 꿇고 의지할 때..
의외로 수월하게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교회에서는 꼭 있어야 하..
그러한 교회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분쟁이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치에 합당한 점을 찾아 양심에 호소하려고 하고..
이치적이고 합리적인 거래나 협상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분쟁의 해결점을 민주적인 사람들의 양심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독재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그 말씀을 기준삼아 판단하고..
해결점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규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야지..
사람의 양심이 근거해서 말해지면 안 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기 전에는 율법이 죄의 유무를 따지는 기준이었으나..
지금은 율법이 기준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가 죄의 유무를 따지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훈련이 안 되어 교회생활에 헛다리짚고 허둥대는 모습이 오늘날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제자 야고보는 우리에게 ‘율법의 준행 자가 되고..
율법을 기준삼은 재판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약4:11-12)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룬 복음을 기준삼아서 죄의 유무를 논해야 하고..
형제가 죄를 범할 때, 즉 믿음생활에서 벗어날 그때..
조용하고도 단호하게 권고해야 합니다.
듣지 않을 때는 두세 증인을 대동하고 가서 같이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지도자의 말도 무시하거든 헌신짝 버리듯 버려야 합니다.
교회에서 그를 출교시키고 마음에서도 그를 몰아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 흘린 피로 값을 주고 산 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 베드로는 주께 질문하기를..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몇 번쯤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든지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끝에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던 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하여..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마18:15-35)
용서와 탕감과 대속은 뜻이 그게 그거 같지만..
세분해서 살펴보면 그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
어학사전에 따르면..
용서는 ‘죄를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탕감은 ‘채무를 일정부분 덜어주거나 모두 없애주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속은 앞서 말한 두 가지 경우보다도 더 확실하게..
‘죄인을 대신하여 자기가 그 모든 값을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탤런트 김수미 씨는 한때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남편의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아쉬운 소릴 하면서 지인들한테서 몇 백씩 돈을 빌려 쓰는 처지였다고 하니..
세상 살 맛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믿음으로 살던 탤런트 김혜자 씨가 통장하나를 내놓으면서 하는 말이..
‘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한방에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때 주든가’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김수미 씨는 나중에 다 갚았지만, 그 통장으로 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고 합니다.
김혜자 씨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실천하려고 흉내 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은 이런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교회생활이고..
이 땅에서의 교회생활을 통한 헌신입니다.
짐승 잡아 그 피로 속죄제를 드린 것은 온전한 대속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죄인의 양심까지 깨끗하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은..
영원한 속죄이고 영원한 생명의 원천입니다.(히9:9-15)
그리스도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8:32)
진리가 무엇입니까?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요14:6)
그가 하신 약속이 진리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그 약속의 말씀은 변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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