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혼자되어 외로울 때 더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법입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혼자가 되어..
노중에서 돌을 베개하고 누워서 상념에 젖어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었고..
2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대적, 에서를 앞에 두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여..
식솔들과 재산들을 분산하여 강을 건네놓은 후..
홀로 남아 깊이 생각에 잠겨 하나님께 기도할 그때도..
하나님은 처량한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모세는 40에 되어서 자기민족을 돌아볼 생각을 하였으나..
그 의지하던 학문과 무술 때문에 쫓기는 몸이되어..
혈혈단신 산골 오지로 숨어 들어가 양떼를 모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실로 80이 될 때까지 허송세월을 하다가..
나이 많아 늙은 자신을 바라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회한에 젖어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었고..
젊어서 하지 못했던 민족의 대 숙원을 이루어냈습니다.
엘리야도 850대1의 영적대결에서 주변에 의지할 사람은 없었으나..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호쾌한 승리를 거두었고..
또 이세벨의 위협과 공갈에 몸을 떨며..
혈혈단신 광야로 들어가서 죽기를 구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
하나님은 비로소 그를 일으키시고..
그를 세워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기적적인 사건들은 옛날 믿음의 조상들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니고..
오늘 날에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만 있다면..
옛 선조들이 경험했던 것보다도 더 큰일을 우리는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어 의지 없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으면 그분은 반드시 측은히 여기시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양의 시력은 대략 마이너스 10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1m를 넘어서면 사물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양몰이 개가 목장주의 의도에 따라..
양 무리를 강제로 이리저리 몰아서..
적절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경험 많고 늙은 우두머리 양(羊)이..
양 무리에겐 필수적이었다고 합니다.
시력이 약한 때문에 양들은..
우두머리양의 꼬리만 바라보고 길표를 잡는 것입니다.
앞서 가는 양의 꼬리가 길표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두머리양은 자기도 역시 시력이 약하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길표로 잡고 그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양은 털을 깎기 위해 눕히면 잠시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고 합니다.
또 도살을 당할 때도..
피를 콸콸 흘리면서도 소리 지르지 않고..
그저 눈만 껌벅거리다가 숨지기 직전에야..
잠시 몸을 떨 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양이라고 칭하신 것은..
목장주인처럼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양(羊)이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만큼..
자애롭고 사랑많으신 하나님 자신의 품성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다.
몇 년 전에 대관령에 있는 양 목장에 견학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는..
산등성이 이곳저곳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10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한 구역에 양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우리가 다가가서 양들을 불러보았으나..
슬쩍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 민망합니다.
양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또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 펼쳐져있었는데..
철조망으로 둘러친 구역마다 풀의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구역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어떤 구역은 옛날 시골의 보리밭처럼 풀이 자잘하게 자라있었으며..
어떤 구역은 벼 못자리 싹을 틔울 때처럼..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조금씩 돋아 있었고..
어떤 구역은 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까만 흙만 드러나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각각 다른 모습의 풀밭들이..
저렇게 펼쳐질수 있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한 개의 구역은 양들이 사흘을 두고 먹을 양식창고였습니다.
사흘이 지나면 풀은 하나도 없고 맨땅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나흘째 되는 날은 목자가 둘러보아서..
가장 좋은 초장으로 양떼를 인도하여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양 우리에 풀이 없어도 양들이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목자가 곧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쓸 것을 위하여 근심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영리하고 지혜로운 양들이 할 일인 것 같으나..
실은 어리석기 짝이없고 미련한 짓입니다.
육신에 필요한 좋은 것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부분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고 소원하면 그것도 이루시고 이것도 이루시는 것입니다.
무능하고 고약한 육체의 요구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고 영의 요구를 존중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무능하고 악한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사랑 많으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고..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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